세계 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팁 모음
우리는 살면서 자신이 쌓아온 경험치와 실력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실력이란 교류가 활발한 넓은 무대에서 객관적인 기록(성적)을 남길 때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다. 이는 오델로와 같은 마인드 스포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온라인 서비스에서 시작한 게임 전적을 스스로의 커리어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오프라인 대회만한 게 없다. 오프라인 공간에 나오면서 좀 더 생동감 있는 경험과 함께 도전의 동기를 키워 나가고, 그렇게 해서 기사가 탄생한다.

이번 글에서는 활동 범위를 해외로 넓혀 나가는 도전자들을 위한 여러 팁을 소개한다. 참고로 아시아-태평양 대회와 같은 타 국제 대회도 마찬가지로 해당한다.
처음으로 참가하는 WOC 선수를 위한 조언 by 벤 실리
아래 글은 오델로 미국 챔피언인 벤 실리(Ben Seeley)의 글입니다. 세계 오델로 대회에 처음 나오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이라고 합니다. 2018년 10월 초에 오델로 오픈채팅방에서 이 글이 올라왔는데
no-kung.tistory.com
이전에 필자는 19년도 도쿄 대회에 나가기 전 벤 실리(Ben Seeley, USA)의 글을 번역해서 게시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25년 기준, 세계 대회 두 번(19 도쿄, 22 파리), 아시아-태평양 대회 한 번(23 울란바토르) 경험한 입장에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정리해 본다.
● 아침 식사는 필수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지만 워낙 필수 중의 필수이기에 강조의 뜻으로 명시해 둔다. 호텔은 반드시 아침 식사를 포함하는 걸로 예약한다. 아침밥을 주변의 음식점이나 편의점 등에서 구할 수도 있지만, 영양가가 보장된 끼니는 웬만해서 호텔 내부의 제공식이 좋다. 또, 보통 국제 대회는 1라운드가 오전 9시로 꽤 이른 시각이라서, 아침에 일어나서 대회장에 출석할 때 동선을 줄이는 것이 좋다.
○ 1라운드 상대가 네임드라면?
리셉션 날 참가자 등록을 하고 테이블 추첨식을 진행한다. 이때 대회 첫 라운드의 상대가 정해지고 자신이 흑인지 백인지 미리 알고 들어간다. 혹시 오델로 기사들 사이에서 유명한 사람을 만난다면, 이 사람의 오프닝 빈도나 패턴을 미리 파악해두면 좋다. 대표적인 방법으로:
(1) 해당 선수의 기보 아카이브를 받아서 점검해 보기
(2) 오픈채팅방 등 메신저를 통해 오프닝 관련 정보를 기사들에게 문의하기
등이 있다.
실제로 본인은 22년 파리 원정을 갔을 때 첫 라운드 상대로 덴마크의 Karsten Feldborg(대각 오프닝 중 Aircraft/Feldborg의 그 이름 맞다)로 결정이 나고 그날 밤 타 기사로부터 아카이브 링크를 받은 적이 있다.
● 시차에 빨리 적응하기
대회 장소가 아시아이면 괜찮지만 세계 대회는 보통 유럽 대륙에서 많이 열린다. 유럽은 서쪽에 있기 때문에 현지에서 잠이 일찍 깨는 경우가 많다. 현지는 꼭두새벽인데 내 몸은 아침 시간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본인은 파리 현지에서 대회 당일 새벽 4시(한국 시간 오전 11시)에 멀쩡하게 깬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폰을 만지기라도 하면 아침에 피로가 몰려올 수가 있다. 대회 첫날 아침까지는 생체리듬 맞추기에만 집중한다. 호텔 방에서 정신이 번쩍 들어도 대회 직전 마지막으로 오프닝 체크나 연습 게임 등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 동행하는 참가자가 있다면?
같이 참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회 전날 취침 전 연습 게임을 할 수 있다. 지참해둔 소형 판이든 모바일로든 모두 가능하다. 이때 나와 연습 상대 모두 참가자이기 때문에 양쪽 모두 도전하는 입장에서 동시 점검을 할 수 있다.
* 1군 오프닝: 각자 이번 대회를 위해 준비해둔 길
* 2군 오프닝: 이번 대회는 아니지만 평소에 익혀둔 적이 있는 길
* 권장 방법: 먼저 양쪽에서 오프닝을 [1군:1군] 으로 정하고 흑백 교대로 두 판을 둔다. 그 다음 [1군:2군] 오프닝 구도로 바꿔 마찬자기로 흑백 교대를 하고, [2군:1군]으로 또 두 판을 둔다. 이 정도만 해도 웬만한 기본기 점검이 된다. 더 하고 싶으면 [1군:사파 오프닝] 구도로 또 바꿔서 아까와 같은 방식을 따르면 된다.
본인은 파리 대회 때 리셉션 전날 입국하고 다음날 낮에 협회장님네 방에 찾아가서 이 방식으로 연습 게임을 둔 적이 있다. 마침 자석 소형 판이 있어서 오프라인 연습이 가능했다.
● 낯선 오프닝에 당황하지 말 것
대다수 참가자들은 잘 알려진 정파 오프닝을 따르지만 일부는 -4/-6 오프닝을 냅다 지르기도 한다. 이는 일종의 도박 심리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크게 상·중·하위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상위권과 하위권은 정파 오프닝을 많이 쓴다. 상위권은 메이저 루트에 대해 깊게 학습을 해왔고, 하위권은 오프닝을 잘 모르거나 주류 오프닝부터 첫 발을 떼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하지만 중위권에서는 사파 오프닝이 대충 1/3~1/2 확률로 나온다.
중위권 사람들 일부는 "정파로 시도했다가 상대가 더 잘 알아서 내가 일방적으로 끌려가면 어떡하지"와 같은 사고를 하기도 한다. 이들은 결국 빈도가 낮은 길을 택해서 초반부터 낯선 그림으로 틀어놓는다. 따라서 처음부터 수 읽기에 들어가는 상황을 미리 유념하자. (본인도 19년 도쿄 대회 때 Brightwell 두 번 만나고 Bhagat도 만나 봤다.)
○ 30분의 함정
국내 대회에서는 라운드당 20분×2로 주어지는 반면 세계 대회 예선전에서는 30분×2만큼 할당이 된다. 그래서 처음 도전하는 사람들은 "시간은 충분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 수가 있으나 이는 오산이다.
국내 대회는 일반적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하지만 세계 대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다. 그마저도 명목상 시간표가 그렇고, 실제로는 테이블 정리 지연이나 판정 관련 시비로 진행이 줄줄이 밀려서 7라운드가 10~20분 더 늦게 끝날 수도 있다. 그만큼 러닝 타임이 길다는 뜻이다. 그래서 체력이 국내 대회보다 더 바닥나서 뇌정지가 올 수 있다.
† 19년 도쿄와 22년 파리 때는 6:30쯤에 끝났던 걸로 기억하지만 최근에는 라운드 간 쉬는 시간이 15분에서 20분으로 조정되어서 그런지 일정이 더 길어졌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해외에서는 피로가 말끔히 풀리지 않은 상태라서, 대국 도중 신진대사가 느려지고 사고 회로에 버퍼링이 잘 걸린다. 그래서 대국 시계가 체감상 평소보다 빨리 흐를 수가 있다. 결국 시간을 남기고 싶어도 못 남기는 일이 꽤 많다.
그렇기에 중반 수 읽기는 단순하면서도 정확하게 셈해야 한다. 특히 엔딩에서는 경우의 수가 스파게티 같이 꼬이는 고통스러운 그림이 불시에 나올 수 있어서, 이를 대비한 시간은 미리 쟁여둬야 유리하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본인은 "한 번 적당한 수가 눈에 들어오면 그 순간부터 30초 이상 끌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다. 먼저 눈에 띄는 자리가 일반적으로 좋은 수이기 때문. 또, 어려운 엔딩이 나왔는데 잔여 시간이 10분 남짓이면 인내심을 총동원해서 경우의 수를 최대한 검산해야 한다.
● 첫 날은 체력 안배, 둘째 날이 분수령
첫 날에는 승점 분화가 얼마 안 되어서 대진 상대로 상·중·하위권을 다 만나지만 둘째 날에는 자기와 레벨이 비슷한 상대하고만 만난다. 6~8승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위권 사람들과 만난다.
첫 날 상위권 사람들과 둘 때에는 평정심에 주안점을 두자. 이 때에는 이상한 실수만 없으면 된다. 하위권 사람과 둘 때에는 시간을 남기고 끝내면 좋다. 세계 대회는 라운드 간 쉬는 시간이 20분인데, 평이한 상대의 경우 국내 대회(20분×2)처럼 상정해서 두면 나와 상대 합쳐서 잔여 시간이 20분 정도이고, 그러면 실질적 휴식 시간은 40분이 된다. 이 틈에 시차에 따른 피로를 얼른 털어내는 것이 좋다. (대충 해도 상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불필요한 장고로 시간을 잡아먹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라운드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중위권 사람들과 붙을 때 특히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자. 둘째 날이 나의 성적을 결판 내는 중요한 날이다.
○ 엔딩에서 돌을 셀 때 소리가 조금 나도 OK
긴장이 계속되면 돌을 셀 때 가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로 상대방도 돌을 소리 내면서 자기 언어로 '하나 둘 셋'을 자주 셈한다. 물론 작게 속삭이는 톤으로. 손가락으로 세거나, 테이블에다 검지 손가락으로 숫자 쓰면서 덧셈 뺄셈을 해도 괜찮다. 어차피 나와 상대 모두 오델로 판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서 소리가 나도 귀에 잘 안 들린다. 정말 문제가 될만큼 요란하다면 그 때는 대회장 심판이 정숙을 요청한다.
"국내 대회가 내신 시험이라면 세계 대회는 수능, 심층 면접 내지는 대학 본고사에 해당한다."
국제 대회는 준비 과정이 긴 데다가 기회를 잡기 어렵기에 그만큼 중요한 무대이다. 이때에는 정말 다음 도전은 없다는 마인드로 뛰어들어야 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즐겁고 알찬 여정으로 채우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