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읽기: no-kung.tistory.com/26

2부 읽기: no-kung.tistory.com/27

 


◎ 6라운드 ◎
○대국 상대: 김관윤 8단●

6라운드 기보


5라운드까지 마치고 난 후 중간 결과는 3승 2패. 아침에는 두 판에서 너무 기우는 바람에 좀 당황한 느낌이 있었지만 이내 자신감을 얻었다. 다음 라운드 페어링을 기다리고 테이블을 보니, 나는 백을 잡고 리치님과 붙게 되었다. 지난 7월 명인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림6-1 = ●C4E3F4C5D6F5C6●

이번 오프닝은 2라운드와 마찬가지로 Rabbit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판에도 최선(F3) 대신 차선(F5) 자리로 수를 틀었는데, 이때 흑 차례에서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정석 오프닝이 아닌 낯선 길이라 나타나는 건데, 사실 나는 백 6수(F5) 다음 대응을 최선인 D3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C3에 두신다.

'음? 뭐지? ……' 내 차례에도 정적이 흐른다. '이거 분명 오델로 퀘스트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최선 수가 어디였더라?'

이렇게 고심하다가 결정한 수는 F3이었다. D3의 경우 상대에게 개방도 1인 F3을 내주니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물론 이건 판단착오다. 백 D3 다음에 흑이 F3으로 대응해도 다음 수에 백 G4를 두면 흑의 선택지를 상변부나 우변부 쪽으로 몰아내므로 호수였던 것.)

 

그림6-2 = 그림6-1 + ○F3D3C3D2●

아까 주저했던 자리인 D3은 흑 9수가 가져갔다. 이어 나는 C3으로 위쪽 표면을 덮었고, 상대는 다시 D2으로 찔러 나왔다. 그래서 나도 마찬가지로 B4로 파고들면 E6이 방어가 되니 무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6-3 = 그림6-2 + ○B4B5●

하지만 그건 자충수였다. 상대가 B5로 붙이고 들어가니 이번에는 내가 B3, E6 자리를 못 두게 된 것이다. 이렇게 C5를 중심으로 뭉쳐있는 구조, 즉 '송이'는 3라운드에서 이미 당한 바 있었는데, 여기서 또 궁지에 내몰린 것이다. 아아… 실수는 반복되는구나!

제 14수에서는 아래쪽에서 건드려볼까 하면서 둘 곳을 둘러봤다. 일단 B3이나 E6 중 한 군데라도 둘려면 침투를 해야 할 텐데, 일단 돌이 2개 뒤집어지는 D7을 골랐다.

 

그림6-4 = 그림6-3 + ○D7C2●

아뿔싸. 또 그림이 틀어졌다. 백 14수로 D7을 시도한 목적은 다음 턴에 B3에 둘려는 것이었는데, 흑 15수의 대응이 C2가 되니 B3에 두기 곤란해졌다. C3 자리의 백돌이 흑으로 뒤집히면서, 이때 B3에 두면 흑에게 E2를 내주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일단 저 오목하게 패인 E2를 점하러 모양을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다시금 둘러보았다. 보아하니 A5에다 둔다면 일단 B6, B3 자리는 흑이 들어오지 못하니 무난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6-5 = 그림6-4 + ○A5E6●

백 16수로 A5를 고르고 난 뒤 상대 측의 대응은 E6이었다. 그러고서 '음 이제 B3을 살펴볼까' 하면서 돌을 집어들려고 했는데…

실제로 최선수는 맞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또 엉뚱한 생각을 해버린 것이, B3에 둘 경우 D2 자리가 백돌로 바뀌어서 E2에 백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아니, 오히려 이 경우에는 상대의 좋은 자리인 F6을 견제해야 하니까 과감하게 B3을 택해야 하지 않았던가?

기껏 생각해서 찍은 자리는 결국 E7이다.

그림6-6 = 그림6-5 + ○E7G4G3B6●

흑 19수의 대응은 G4로 빠져나오는 수였다. 나는 선택지가 거의 비슷해 보여서 G3으로 붙여서 갔고, 이어서 흑은 B6에 들어와 숨었다.

보아하니 아까 눈여겨봤던 B3과 E2 자리가 다시 신경 쓰였다. 어차피 여기서 또 오른쪽 구역을 건드려봤자 백의 벽면만 두꺼워질 테니 이들 둘 중에서 고르기로 했다. 타이밍이 좀 늦긴 했지만. 그렇게 해서 백의 오른쪽 영역에 붙여나가는 E2에다 착수했다.

 

그림6-7 = 그림6-6 + ○E2F2●

상대 측은 F2로 흑의 위쪽 벽면을 붙였다. 다시 한번 B3을 살펴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숨어 들어가기 좋은 모양이 되었다. 따라서 백 24수는 별 다른 고민 없이 B3으로 결정했다.

 

그림6-8 = 그림6-7 + ○B3G6●

하지만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 같은 판에서 또다시 승산을 놓치는 실수를 범했다. 먼저 그림6-8에서 바른 수는 F6이다. 그런데 판을 둘 때 나는 G5라는 엉뚱한 곳에다 두었다. 사실 이건 "○F6→○G5는 가능하지만 ○G5→○F6 순으로는 못 둔다"는 논리로 쉽게 고를 수 있는데, 그 간단한 걸 놓치고 만다.

G5를 두면서 했던 생각은 이렇다: 'G5에다 두면 흑이 백의 오른쪽 진영 내 어디를 두고 백이 둘 곳은 생긴다.' 이 판단은 흑 27수를 보고 나서야 심각한 오답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림6-9 = 그림6-8 + ○G5H3●

흑 27수 대응은 H3이었다. 그림 6-9의 모양을 본 순간 눈 앞이 깜깜해졌다. 흑 H3은 (↙)방향 대각선 가닥이 작용하지 않기에 G4 자리가 흑돌로 뒤집어지지 않은 것이다.

'잠깐만… 이러면 난 오른쪽 구역에 못 두잖아!'

궁지에 내몰리자 부랴부랴 다른 선택지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이 턴에서도 또 판단 미스를 내버렸다. 그림 6-9를 보면 흑은 아까 들어온 H3 말고도 H4에도 조용히 들어올 수 있다. 이를 눈치채고 본다면 먼저 백은 C1~F1 중 아무 곳이나 두고 흑 H4 다음에는 백 H5로 붙여오는 시나리오를 생각해야 한다. 특히 이때 백이 E1에다 둔다면 흑이 A6으로 내려앉는 수를 견제할 수도 있어서 최선이다.

하지만 실제 대국에서는? 되려 A6을 그냥 먼저 먹겠다는 생각으로 찍었는데, 이렇게 되니 상대 측에 미끼를 던져주는 꼴이 되었다.

그림6-10 = 그림6-9 + ○A6F6●

그 좋은 자리는 바로 다름아닌 F6이었다. 그림6-9에서 흑 F6은 위와 왼쪽 가닥으로 돌이 뒤집히지만 이번 턴에서는 왼쪽 가닥이 사라진다. 결국 E6 자리는 백돌로 유지되어서, 나는 F7에 들어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뒤늦게 상변 중에서 고르기로 했고, 돌 하나 뒤집는 수인 F1에다 두었다.

 

그림6-11 = 그림6-10 + ○F1E1D1F7H6H5F8H4H2B1C1G1H7E8D8C8B8G7●

중반에 백이 리드를 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채로 흑의 움직임에 계속 끌려다녔다. 막막한 중후반을 진행하면서 수치가 한참 밀리다가, 어느덧 종반 직전에서 세 변이 굳어졌다.

흑 45수와 백 46수는 각각 C8, B8이었으며, 이어서 흑이 C7 자리를 두는가 싶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G7에 들어왔다. 왠지 흑 C7, 백 B7로 진행하면 양대각선[B7~F3]이 백돌로 잠기는 경우를 의식한 수인 듯했다.

그림 6-11에서 선택지를 보자 하니 H8 말고는 둘 곳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하변을 던지는 수밖에.

그림6-12 = 그림6-11 + ○H8G8C7A8G2A2●

백 48수부터 52수까지는 턴이 빠르게 넘어갔다. 흑 53수 차례에서, 상대 측의 장고가 이어졌다. 그것도 한 3분 넘게.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중압감이 밀려왔다.

'어디를 두실려고…?'

마침내 정적이 깨지고 A2에 흑돌이 놓였다. 여기서 주어진 선택지는 세 군데. A열에서 흑과 백이 두 칸을 두고 떨어져 있기에, 나는 일단 A3 다음에는 A1에다 둘 수 있겠거니 하면서 A3에다 두었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꼭짓점 A1을 먹느냐가 아니라 2행의 백돌을 살리느냐이다. 흑은 어차피 H1에다 두어서 상변을 살리게 되어 있는데 굳이 A1을 먹어야 했을까? 차라리 B2에다 두어서 [C2~F2] 사이의 백돌을 유지하는 것이 나았다.

그림6-13 = 그림6-12 + ○A3H1A1B2A4A7B7●: 57수부터 60수까지 백 패스.

아니나다를까, 54~56수에서 ○A3H1A1○을 두고, 57수 B2를 두고 나니 패스를 하게 됐다. 그런데 이어 A4, A7에 흑이 들어온 뒤에도 백이 둘 곳이 없다! B열이 모조리 흑돌로 변하는 바람에 백은 B7에도 두지 못한 채로 3연 패스를 허용하고 만 것이다. 연타를 당하고 나니 몹시 당황했고, 돌 개수를 확인하는 중에는 그야말로 정신이 멍한 상태였다.

6라운드 결과는 22:42로 패. 모처럼 과반승을 달리던 것이 다시 반반(3승 3패)으로 돌아왔다. 일본인 참가자들은 모두 최상위권으로 올라갔고, 나는 한국 사람과 또 붙게 되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라운드는 아베 二段과 만나게 되었다.

◎ 7라운드 ◎
●대국 상대: ABE Tatsushi (安部 竜史)○

7라운드 기보

사실 총평부터 말하자면, 이번 판은 좀 난장판이었다. 짚어봐야 할 부분이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7라운드 흑을 잡은 나는 1·5라운드와 마찬가지로 Leader's Tiger로 진행하였다.

그림7-1 = ●E6F4C3C4D3D6F5+D2○: 제 8수부터 오프닝 이탈이다.

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백이 차선(F6) 아니면 최선(C2)으로 받겠거니 하며 대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 실제로 둔 자리는 D2였다. 백에게 마이너스인 자리인데, 여기는 어지간해서는 두지 않는다. 물론 나는 이 상황에서 최선 대응을 알고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바로 C5에다 두었다.

그림7-2 = 그림 7-1 + ●C5B3E3B5○

이후 상대가 B3으로 가닥을 빼니 나는 B3으로 숨어들어갔고, 또 B5로 백이 붙여와서 그림 7-2와 같이 그려졌다. 나는 흑돌을 붙여나가고자 C6으로 틈을 메우기로 했다. F3과 C6의 차이점은 바로 백이 다음 턴에 B4에다 둘 수 있는가의 여부이지만, 사실 그 당시에는 그냥 둘 중 하나를 찍은 것이다.

 

그림7-3 = 그림 7-2 + ●C6F3○

흑 C6 다음 수는 백 F3이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수는 바로 E2인데, 바로 백이 B6에 못 들어오게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A5도 좋은 자리이지만 판단이 쉬운 쪽은 E2이다.

그러나 정작 찍은 자리는 엉뚱하게도 G3이다. 난 그저 [B3~F3] 라인이 모두 백돌로 되어 있어서, G3 자리는 가닥이 하나라고 한단해서 저렇게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대에게 G4 자리를 그냥 던져주는 꼴이라 엄청난 자충수다.

참고로 직선 라인에 맞대면서 대각선 가닥으로 붙이는 수는 '변에 착지할 때' 좋은 것이지 그림7-3과 같이 '변에서 붕 뜬 경우'에는 악수가 될 수 있다. 나는 대국 당시 이 부분을 혼동하는 바람에 오산을 한 것 같다.

 

그림7-4 = 그림 7-3 + ●G3G4E2B6○

결국 실제로 백은 G4로 침투해 오고, 나는 백 영역 중 붙어있는 곳 하나 골라서 E2에다 뒀다. 그림 7-3에서 E2에 뒀더라면 백은 B6에 못 두었겠지만 E2의 타이밍이 늦어서 상대에게 B6을 허용하고 말았다.

'잘 뭉치던 것이 왜…' 하고 잠깐 막막해하다가, 우변부를 살펴보았다. 일단 여기서 턴을 넘기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자 하니 H열에 세 군데에 선택지가 있는데, 흑 19수는 돌 하나 뒤집는 H3으로 정했다. 그리고 이어서 G5에 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7-5 = 그림 7-4 + ●H3H5○

H3과 H5가 채워지고 나니 오른쪽에서 계속 버틸 차례가 됐다. 그림7-5에서 바른 수는 원래 F2이다. 혹은 ●H4H2○로 턴을 교환하더라도 역시 F2에다 두는 게 좋다. 하지만 나는 그저 상대가 G5에 들어오는 걸 선수 친다고 이 자리에 냉큼 둬버렸다. 어차피 여기는 백이 둬봤자 H4에 흑이 두기 좋게 돼버려서 고려할 사항도 아닌데, 여기서 생각이 너무 짧았다.

그림7-6 = 그림 7-5 + ●G5F1F2C7B4H6○

흑 21수로 G5를 두고 나니 상대는 F1로 상변에 착지했다. 나는 빈 자리를 메우러 F2로 대응했고, 이어 백 C7, 흑 B4로 붙여나갔다. 그 후 상대는 다시 우변인 H6에 내려앉았다.

왼쪽은 흑돌이 하나 드러나 있었지만 그렇게 신경쓰이지는 않았고, 오히려 흑이 많이 모인 오른쪽에서 틈을 메우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흑 27수는 G6으로 정했다.

그림7-7 = 그림 7-6 + ●G6A5○

백 28수로 A5로 들어오자 좌변부는 백돌로 벽이 굳어졌다. 그래서 나는 좌상부의 넓은 공간은 당분간 상대가 못 들어오니 넌지시 C8에 두어 턴을 넘기고자 했다.

그러나 이건 오판이었다. 그림7-7대로라면 C8에 두지 않고도 상대에게 템포를 넘겨주는 방법이 있었는데, 바로 E1이다. 이 경우 백이 D1에다 둬도 두 가지 대응이 존재했다.

▷ 백 D1은 [D1~H5] 방향 가닥이 걸려 흑이 H4에다 둘 수 있게 된다. 그러면 ●E1D1H4H2○ 순으로 진행하면 D6과 E5 자리가 다 백돌로 바뀌어 흑에게 숨통이 트인다. (D7, F6 착수 가능)
▷ ●E1D1C1B1C2G1H4H2○ 순으로 상변을 굳히면서 진행을 해도 역시 마찬가지로 흑이 D7, F6에가 둘 수 있게 된다.

이렇듯 특정 변에 착지해서 턴을 교환한 다음 모양을 변화시키는 건 수 읽기에서 많이 등장한다. 여러 수 내다봐야 하지만 그리 까다로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림7-8 = 그림 7-7 + ●C8D7D1G1A4A3○

백 30수로 D7에 들어오자 나는 D1로 붙여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림 7-3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렇게 '직선 라인에 대각선 가닥으로 붙여서 숨기' 전략은 변에 붙을 때 주로 유효하다.

상대는 우하부에 들어오기 싫었는지 G1로 기어나왔다. 어떻게 받을까 생각하다가 먼저 흑 A4로 좌변에 숨기로 했고, 이어 백 A3으로 굳어졌다. 이때 본인도 사실 우하부에 접근하는게 거북해서 좌상부에서 버티기로 했다. 아까 그림7-7 때에는 좌상부를 그냥 냅두기로 했더니만, 생각이 우왕좌왕한 나머지 확실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좌상부에서 생각해본 수는 C1로 붙이는 것이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은 수이지만 저 경우 B2로 스토너 트랩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단지 대국할 당시에는 눈치채지 못했을 뿐.

그림7-9 = 그림 7-8 + ●C1F7A6A7○

흑 C1 다음 상대가 F7에 들어오자 나는 뒤따라 아래쪽 영역을 건드릴까 고민하던 차, 아무런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서 부랴부랴 A6을 찍었다. 이러면 상대 측은 A7로 들어올 수밖에. 그리고 이제 B5 자리가 흑돌이 되었으니, E8에다 둘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수 역시 잘못되었다. 그림 7-9에서는 E1이 최선이고, 두 턴 거슬러 흑 37수 때 E1은 더 좋은 수였다. 이유는 흑이 E1에다 둘 경우 백은 B1 강제가 되고, 그러면 흑은 C2로 비집고 들어가면 백이 다시 아래로 빠지는 템포가 된다. 지금이야 "E1-B1-C2"와 같은 삼각구도는 바로 캐치해낼 수 있지만 저 때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했던 것일까?

 

그림7-10 = 그림 7-9 + ●E8F6E7F8D8B8○

흑 39수부터 백 44수까지는 하변부 마감 단계였다. 나는 상변의 삼각구도가 급소인 줄도 모르고 상대와 같이 아래쪽을 채워갔는데, 그림 7-10에 도달하자 급기야 불상사를 내고 만다.

저기서 E1 자리가 더더욱 결정타가 된 것은 이미 하변부에 둘 자리가 고갈났기 때문이다. 저 타이밍에 딱 ●E1B1C2●로 턴을 상대에게 넘기기만 했어도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을 터. "어차피 E1은 백에게 나쁜 수니까 저걸 킵하고 다른 데(=C2)를 건드리면 되겠지" 하는 그릇된 판단이 기회를 날려먹고 말았다.

 

그림7-11 = 그림 7-10 + ●C2E1○

이것이 기회 증발인 이유는 시간에 쫓기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흑 C2를 두고 나서 백이 상변을 그냥 던지기를 시도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그림7-11과 같이 나왔을 때, 흑 B2로 음대각선[C3~F6]을 잠가야 했지만 단지 상변 하나만 보고 H8을 덥석 물었다. 이때 남은 시간은 단 30초. 중후반에 시간을 끄는 바람에 이 시점에서 정확한 판단을 할 여유를 잃은 것이다.

그림7-12 = 그림 7-11 + ●H1G7○

당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내가 잠갔어야 할 음대각선을 상대가 백 G7로 잠그는 바람에 나는 H8에 바로 두지 못하게 됐다. 남은 시간은 20초를 향해 가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G2라는 대참사를 범하고 만다. B2가 최선인데, 백이 A2로 버티면 어떡하지 하면서 수 읽기가 빗나간 것이다.

그림7-13 = 그림 7-12 + ●G2H4B2A2H8H7G8●

백 H4 다음 하는 수 없이 흑 B2로 붙이기로 했고, 상대가 A1 대신 A2로 들어가자 바로 H8에다 착수했다. 그리고 H7과 G8도 채워진 후, 상대가 갑자기 H2로 들어갔다.

'음? 뭐지?' 나는 B1과 A1을 마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수를 두다니. 혹시 짝수 칸을 맞추려고 했던 걸까?

이때 시간이 그만 바닥났다. 그리고 상대가 대국시계를 가리킨다.
"네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그림7-14 = 그림 7-13 + ○G2H4B2A2H8H7G8●: 59-60수는 백 패스.

판 결과는 그림7-14와 같이 ●39:25○로 나왔다. 하지만 시간패를 당하는 바람에, 결국 상대와 이야기해서 스코어는 ●31:33○으로 처리되었다. (돌 개수는 많은데 시간패이면 한국 규정 기준 31:33으로 간주한다.)

자충수가 많은 판인 데다가, 시간 관리에 실패하여 졌기에 공허함이 계속 남았다. 1라운드가 가장 큰 점수 차로 지긴 했지만 충격은 이 판이 더 컸다. 역시 오프라인이란 직접 몸으로 익혀봐야 자신감을 쌓는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 본인 결과 ◎
대회 전적: 예선 3승 4패, 25명 중 18위, 14급 → 초단 입단
누적 전적: 5승 1무 8패
1라운드 - URANO Kento, 흑, Leader's Tiger, ●10:54○, 패
2라운드 - 김동수 초단, 백, VS Rabbit, ○39:25●, 승
3라운드 - 소재영 4단, 흑, VS Swift Boat, ●12:52○, 패
4라운드 - 이근철 아마7단, 백, VS Tiger(Many Blacks), ○40:24●, 승
5라운드 - 문성철 초단, 흑, Leader's Tiger, ●43:21○, 승
6라운드 - 김관윤 8단, 백, VS Rabbit, ○22:42●, 패
7라운드 - ABE Tatsushi, 흑, Leader's Tiger, †●31:33○, 시간패

 

경기 후 인천대회 단체 기념사진. 나카지마 테츠야 八段 우승, 스에쿠니 마코토 九段 준우승으로 마무리되었다.


워낙 1라운드와 3라운드에서 쓴 맛을 제대로 보는 바람에, 프로 입단을 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큰 장벽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대회가 끝난 직후 점검해볼 주 요소는 바로 오프닝이었다…
"일단 정석 오프닝부터 익혀보자."

당시에는 몰랐지만 후기를 쓰는 시점(2020년 6월)에서 보면 나는 그때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무단자 2명 중 최상위로 프로 입단을 하였고, 동호회 톡방에서도 거듭 축하해줬다. 그런데 축하의 말이 뭔가 나에게는 '앞으로 연습 빡세게 하자'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호들갑이었을까, 하지만 정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정말 내가 프로의 위치에 설 실력을 쌓아갈 수 있을까? 막연한 번민이 밀려오는 듯했다.

비록 뜻대로 풀리지 않는 순간은 많았지만 그래도 저녁 시간에 감자탕을 먹으면서 동호회 사람들과 친숙해지는 시간 만큼은 무척 즐거웠다. 밤 9시, 자기부상열차 및 공항철도를 타고 눈 부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증정품인 소평 오델로 판을 가방에 담고 그날 겪었던 경험을 고이 간직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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