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에서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매 판마다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어. 프로기사가 다수 참가하는 만큼 늘 경건한 자세로 대국에 임한다.

그런데 정상급 프로기사도 사람인지라 가끔 가다보면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실수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어떤 경우는 정말 초보도 당황할 정도의 패착이 나기도 한다. 실제 오프라인 대회에서도 순간의 착각이 판세를 크게 흔드는 때가 있다.

본인도 세계대회에서 실로 어이 털리는 실책을 범한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13라운드 엔딩인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소개해본다.

이 글에서 소개할 이야기는 2019년 1월 제 3회 왕중왕전 7라운드에 있었던 실화다. 초중반 대국 과정은 [여기]의 아래 부분에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영상의 21:30부터 등장◁

 

 

제 3회 왕중왕전 7라운드 엔딩. 방향은 백의 시선 기준이다.

나는 흑을 잡고 협회장님은 백. 7라운드 중반에서 떡수를 남발하는 바람에 50수 이후로 돌을 대량 빼앗길 상황에 놓였다. 그림의 왼쪽 위에서 ○D1A1B1B2○ 순으로 연타를 치고 다섯 칸을 마저 채우면‥ 16:48로 지게 된다.

백 53수로 D1에 들어갔고 이제 A1에 둘 차례인가 싶었다. 그런데 B1에 착수하게 된다. 분명 H1 자리는 흑돌이라 B1에다 두어선 안 되는데, 이걸 백으로 잘못 보신 듯하다.

결국 나는 돌을 하나 집어와서 원래는 둘 수 없었던 A1(55수)에 착수했다. 

협회장님: 음? 뒤집을 수 있는 거예요 근데?
본인: (A8을 가리키기)
협회장님: 아… 뭐 한 거지? … 허 참! 뭐죠 이게?

문제를 인지하신 뒤 당황을 금치 못하신다.
협회장님: 왜 여기(A1) 안 하고 저기(D1, B1)를 먼저 들어갔지? 헐.

흑 입장에서 -32였던 것이 -4로 바뀐 상황.
협회장님: 이거 지는 거야? 1, 2, 3, 4, … 23. (○H7) 1, 2, 3, 4, 5, (●H8) 둘, 네, 여, 마이너스 6. 음…
협회장님: 아 제정신이 아니구나. 네, 장난 아니고 삽질을 좀 한 것 같아요.

이후 전형적인 엔딩대로 판이 마무리된다.
두 사람: 수고하셨습니다.
본인: (H1을 가리키며) 요 자리, 배‥ 백으로 보셨어요?
협회장님: 허허허…
DT: 누가 백이고 누가 흑이에요?
협회장님: 이럴 수가! 내가 (H1) 이걸 백으로 봐가지고!
DT: 어? 그래도 백이 이긴 것 같은데! 백이 34.
꽁: (중계용 폰을 협회장님께) 이거 갑자기 오류가 나가지고요
협회장님: 하나, 둘, 셋, 넷, … 삼십넷.
DT: 졌으면 몰랐는데!
Iron: 아니 아까 전에, (A1) 여기 찌르고 (G8) 여기 대각 먹인 다음에 (이렇게‥)
본인: 전 여기 (A1, B1, B2) 백, 백, 백 연타 먹이실 줄 알았는데‥
협회장님: 그러니까요. 당연히 그렇게 할 생각이었어요. 근데 (H1) 이게 내 건줄 알았어요!
DT: 아 아깝다. 여기서 3개만 더 먹었으면 헬 파티 (1위, 2위 순위 변동)인데.

------------
사실 이 대화록을 발굴하는 이유는 저 순간이 인상에 남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본인이나 프로기사는 물론 여러분도 범할 수 있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오프라인 대회는 국내 대회 기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이렇게 긴 시간을 쭉 달리다 보면 체력이 바닥난다거나, 눈 앞에 허상이 비치는 등 판단이 엇나가는 경우가 발생하기 쉽다.

 

위 에피소드의 경우 괜히 실수하는 척 봐주기가 아니라 정말로 실수하신 거다. 당시 대회장에서 표정 변화와 제스처로 미루어보아 확실하다. 그리고 저녁 시간 뒷풀이에서 liveothello에 찍힌 저 장면을 계속 돌려가는 등 모두 폭소를 참지 못했고, 당시 한 달간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회자되곤 하였다.

따라서 결론은? "집중력이 곧 실력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