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델로의 초기 세팅은 흑이 D5와 E4에, 백은 D4와 E5 자리에다가 둔다. 그러면 돌 배치는 양대각선과 음대각선 방향에 대해 거울 대칭이 되며, 흑 1수는 어디를 두든 간에 모양은 합동이 된다. 따라서 오프닝이 의미를 가지는 최소 길이는 2수로, 백의 대응 방식에 따라 수직, 대각, 평행으로 갈라진다.
흑 1수는 판세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각 두는 자리 별로 그 사람의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 재미 삼아 짤막하게 글을 써본다.
① 건 (위, D3) : 흑 잡은 사람이 볼 때 자신에게서 가장 멀리 있다. 첫 수를 뜰 때 상대 쪽으로 "전진"함으로써 공격을 개시하겠다는 신호라 볼 수 있다.
② 감 (오른쪽, F5) : 우리는 보통 어떤 사물의 흐름을 파악할 때 오른쪽을 (+) 방향으로 잡는다. 첫 수를 오른쪽에 둔다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통념(?)에 따르는 것으로 풀이된다.
③ 이 (왼쪽, C4) : 우리는 어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사물을 나열할 때 빠른 순위를 왼쪽에, 나중 것을 오른쪽에 둔다. 흑 1수의 네 자리 중 좌표를 읽어나갈 때 알파벳 열이 가장 빠른 곳이 바로 왼쪽이다. 따라서 왼쪽은 우선순위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④ 곤 (아래, E6) : 판을 바라볼 때 가장 아래에, 또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있다. 모든 물체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려 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아래로 출발하는 사람은 안정과 방어를 추구하는 성향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각종 기보를 모은 아카이브에도 보통 오른쪽을 기준으로 정렬하고 있다. 오프닝 일람의 경우 사이트마다 방향이 다르게 나오지만 《노리의 오델로 전략 노트》의 부록에서는 왼쪽, 「droidShimax」에서는 오른쪽이 기준이다. 다른 곳에서도 왼쪽 아니면 오른쪽을 기준으로 정한 데가 많다.
◎ 본인 스타일 ◎
본인은 흑을 잡고 첫 수를 뜰 때 99% 아래쪽으로 출발한다. 물론 요즘에는 사실상 100%라고 봐도 무방하다. 위에서 쓴 성향 추론(?)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데, 본인의 감각을 표현하자면 저 이야기가 아예 농담은 아니다. E6을 둘 때, 흑돌이 아래쪽으로 매달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추가 내려앉은 모습"을 연상해서 뭔가 안정감이 드는 것 같다. 그야 뭐 기분 탓이겠지만…
사실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본인은 오델로를 입문할 때 「리버시 달인」으로 연습했는데, 폰을 오른손으로 들고 엄지로 터치를 하면서 감각을 익혀나갔다. 이때 내가 흑을 잡는다면 첫 수를 둘 때 엄지가 가장 먼저 닿는 곳이 바로 E6이었다. F5도 오른손에서 가까운 자리이지만 엄지의 움직임 상에서 E6이 좀 더 안정적으로 다가왔다. 이후 「오델로 퀘스트」에서도 이 습관을 계승했고, 대회에서도 같은 방향을 유지한 것이다. 물론 오프라인 대국 시에는 돌을 왼손으로 들긴 하나, 흑을 잡을 때만큼은 오프닝 전개 시 그동안 익숙하게 굳어진 아래쪽을 고수하고 있다.
탁구로 치면 이렇다: 탁구에서 서브를 줄 때 탑스핀(전진 회전), 사이드스핀(측면 회전), 언더스핀(역회전)으로 대강 분류할 수 있다. 오델로의 흑 1수와 대응하자면 ①은 전진, ②③은 측면, ④는 역행으로 각각 매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바로 대조하기는 좀 무리인 게, 탁구에서는 서브 방식에 따라 공의 운동 방식, 즉 판의 양상이 직접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본인은 고등학교·대학교 다닐 때 초보자 방식인 역회전을 많이 썼는데, 오델로에서 흑 1수 E6을 두는 것도 이런 손놀림을 종종 연상하곤 한다.)
◎ 덧붙이기 ◎
오델로의 경우 흑이 방향을 정하고 백이 그것에 맞춰 나가는데, 중수 이상에서는 방향에 상관 없이 오프닝 루트를 헷갈려서는 안 된다. 특히 백이 수직 오프닝으로 출발한다면! 실제로 본인이 세계대회에서 백을 잡을 때 방향 하나 뒤집어져서 외운 오프닝을 틀리는 불상사를 낸 적이 있긴 하다…
백이 대각 오프닝을 간다면 방향을 반쯤 정렬할 수 있다. 가령 흑이 (백의 시선에서) C4나 D3으로 출발한다면 ●C4C3D3C5○나 ●D3C3C4C5○와 같이 위쪽으로 정렬하거나, ●C4C3D3E3○이나 ●D3C3C4E3○과 같이 왼쪽으로 맞출 수 있다. 흑이 F5나 E6으로 출발한다면 백은 F6에다 두고 그 다음 턴에 D6이나 F4로 방향을 묶을 수 있다. 본인은 대각 오프닝에서 백 4수를 E3(위) 혹은 D6(아래)로 정렬하기를 택한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스타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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